
법정 유언사항의 효력
채무를 갚을 것을 부탁하는 유언,
효력이 있을까?
유언사항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법정 유언사항 이외의 사항을 유언한다고 해도 유언으로서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언자의 채무를 분할하는 유언은 법적 효력이 없다. 이번 호에서는 법정 유언사항에 대해 알아보고, 추가로 채무에 관하여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 알아본다.
유언이란 ‘유언자의 사망에 의하여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것을 목적으로 일정한 방식에 따라 행하는 법률행위’이다. 민법이 허용하고 있는 유언의 방식으로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있으며 위에서 언급한 5가지 방식에 의하지 않은 유언은 법률상 효력이 없다. 또한 유언은 만 17세 이상의 사람이면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유언사항은 법정되어 있다. 유언자는 유언으로서 상속재산의 분할방법의 지정뿐만 아니라 일정기간 동안의 상속재산 분할 금지, 재단법인의 설립 및 유언집행자의 지정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정 유언사항 이외의 사항을 유언한다 하여도 유언으로서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죽으면 지리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은 유언자의 희망이지만, 법정 유언사항은 아니므로 유언으로서의 법적인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기여분’ 제도 역시 법정 유언사항이 아니다. 기여분이란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의 재산을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하거나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한 자가 있을 때 이를 상속분 산정에서 고려하여 기여자의 상속분을 가산하는 제도’이다. 기여분 산정 절차에 관하여 민법 제1008조의2 제2항은 ‘1항의 협의가 되지 아니하거나 협의할 수 없는 때에는 가정법원은 제1항에 규정된 기여자의 청구에 의하여 기여의 시기·방법 및 정도와 상속재산액 등 기타의 사정을 참작하여 기여분을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여분은 공동상속인 전원의 협의에 의하여 정할 수 있으며, 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기여자의 청구에 의해 가정법원이 그 기여분을 결정한다. 기여분의 결정방법은 공동상속인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결정이므로 피상속인의 유언으로는 기여분을 지정할 수 없음을 유의해야 한다.
채무는 법정 유언사항일까? 흔한 상담 사례 중 하나로, 유언자가 자녀 중의 1인에게 일정 수준의 재산을 줄 것을 조건으로 자신의 채무를 갚을 것을 유언하는 것이 허용되는지를 묻는 경우가 있다(예 : 내가 가진 5억원 상당의 건물을 장남에게 준다. 그 대신 장남은 나의 은행 채무 1억원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채무를 갚는 방법을 지정하는 것은 법정 유언사항이 아니므로, 이러한 유언은 법적 효력이 없다. 이는 피상속인의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피상속인의 채권자는 피상속인의 자력을 믿고 돈을 빌려 주었는데, 유언으로 재산이 없는 상속인에게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채권자에게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채무는 상속분에 따라 공평하게 분할될 뿐이다. 이 경우, 채무에 관하여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하는 것은 허용될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A는 남편 B와의 사이에 자녀 C를 두고 있다. B는 사업상 D은행으로부터 1억원의 대출을 받은 바 있다. A는 자녀인 C가 남편 B의 대출금을 부담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A는 남편 B가 사망하게 되면 C와 협의하여 D은행의 채무를 모두 자신이 부담하는 내용의 ‘상속재산 분할협의’를 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A의 생각은 맞는 것일까? 그러나 금전채무는 원칙적으로 상속재산 분할 협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대법원 1997. 6. 24. 선고97다8809판결 참조). D은행은 B의 재력을 믿고 대출을 해 주었는데, A와 C 둘 만의 협의만으로 재력이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A가 대출채무를 모두 부담하는 것으로 한다면 D은행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위 상속재산분할협의에 관해 D은행이 동의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위 사례에서 B의 사망으로 인하여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는 상속인 A, C와 채권자 D은행인데, A와 C와의 채무분할 협의의 결과를 D은행이 동의한다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B가 사망한 경우, A가 D은행을 상대로 채무를 모두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내용의 통지를 하고 D은행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A가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민법 제454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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